피아니스트 김정원, 20년 만에 조우한 쇼팽..."그의 '마지막 잎새' 그렸다"

입력 2023-10-18 18:38   수정 2023-10-19 14:12

"20대 때는 콩국수, 평양냉면 같은 음식을 잘 먹지 않았어요. 맵고 달고 짠 음식을 좋아했거든요. 나이가 드니까 이제는 그 맛을 알게 됐어요. 음악도 마찬가지로 과하고 자극적인 것보다는 자연스러운 걸 추구하게 되네요."



한때 젊은 스타 연주자이자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이름을 날린 피아니스트 김정원(48·사진). 이제는 데뷔 23년 차 중견으로 자리매김한 김정원이 올가을, 새 음반 '라스트 쇼팽'으로 돌아왔다. 그가 5년 만에 발매한 이번 음반의 부제는 '쇼팽의 마지막 피아노 작품들'(Chopin’s Last Piano Works). 쇼팽이 죽기 3년 전인 1847년부터 1849년까지의 작품 중 녹턴, 바카롤, 왈츠, 마주르카 등을 담았다.

김정원은 18일 서울 통의동 오디오가이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죽음을 앞둔 쇼팽은 건강과 연인을 잃었고, 그토록 소망하던 조국의 독립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이번 음반에서는 회의적이고 쓸쓸하지만, 한편으론 너그러워진 쇼팽의 끝자락을 만나볼 수 있다"고 밝혔다.



김정원에게 쇼팽은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 쇼팽의 음악을 듣고 피아니스트 되겠다고 마음먹었고, 한동안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로 쇼팽 꼽았다. 특히, 그의 20대는 쇼팽 그 자체였다. 2005년 쇼팽 에튀드 전곡 앨범 2006년 쇼팽 스케르초 전곡을 앨범을 냈고, 쇼팽 레퍼토리 연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이후 그는 ‘쇼팽 스페셜리스트’ 타이틀을 벗기 위해 의도적으로 쇼팽을 멀리해왔다고 고백했다.

"쇼팽에 대한 미지근한 감정을 가져가고 싶지 않아서 마음속에서 잠시 떠나보냈어요. 그래도 (쇼팽은) 마음속에 피아노와 저의 관계에서 뗄 수 없는 존재였죠. 이제 40대가 돼서 30대 후반의 쇼팽을 다시 마주하니 그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없어지고, 그저 한 사람을 만난 기분이에요. "

40대 김정원이 그린 쇼팽은, 쇼팽의 아픔과 그리움에 대한 공감을 우선으로 했다고. 일례로 마주르카에는 유별난 애국자였던 쇼팽의 애국심을 고스란히 담았다. 마주르카는 폴란드의 민속 춤곡이기도 한데, 폴란드 서민들의 정서가 녹진하게 담긴 작품이다. 그는 "쇼팽은 평생 조국에 대한 사랑을 표현해왔고, 마주르카는 그 혼이자 심장"이라고 덧붙였다.

"쇼팽의 마지막으로 쓴 마주르카는 이별의 정서를 풍겨요. 어느 한 사람과의 이별이 아닌 듯한 느낌이죠. 비장하지도 않고 그냥 손에 있는 걸 탁 놓는…. 제 환상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

그는 20세기 거장 아르투르 루빈스타인(1887~1982)의 연주를 참고했다고 말했다. 유려하기보다는 투박하리만큼 담담한 연주와 관조적이고 살짝 건조한 소팽을 그려내고자 했다고.

"쇼팽의 후기작은 초기에 비해 감정 전달이 직접적이지 않아서 더욱 아프게 느껴졌어요. 미소 지으면서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 내면에 감춰진 쇼팽의 아픔과 외로움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



이번 녹음은 지난 6월 폴란드의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센터 콘서트홀에서 진행됐다. 폴란드 레이블인 둑스의 대표 사운드 디렉터 말고르자타 폴란스카가 참여했다. 이와 함께 22일 광주를 시작으로 25일 서울, 28일 대구, 29일 청주, 30일 부산에서 5개 도시에서 전국 투어 공연도 열린다.

김정원은 빈 국립음대와 파리 고등국립음악원에서 공부했으며 2009년부터 2017년까지 서울 경희대 교수로도 재직했다. 2001년 무대에 데뷔한 이후 23년간 무대 위를 누비며 연주자, 교육자로 다양한 활동을 해온 김정원에게 중견 연주자로서, 그간의 연주활동에 대한 소외를 물었다.

"가장 아이다운 아이가 가장 어른스러운 어른이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젊을 때는 그에 맞는 연주가 있다고 생각해요. 2030대에는 비싼 시계 하나 사면 자랑하고 싶은 나이잖아요. 때로는 무대 위에서 자신을 뽐내고 표출하고 성취하고…. 그런 젊은 연주가 전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며 입맛이 바뀌듯 자연스럽게 무르익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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